2025. 4. 11. 00:58ㆍ카테고리 없음
하정우, 걷는 사람 그리고 다시 돌아온 감독
어느 날이었다. 무심코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 익숙한 이름 하나에 발길을 멈췄다.
『걷는 사람,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배우가 책을 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 제목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그냥 구매했다.
‘걷는 사람’이라는 표현에는 어떤 거창한 목적도, 선언도, 고백도 없었다. 그냥 ‘걷는다’는 것. 살아가고 있다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모두 걷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그 문장 앞에 ‘하정우’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것은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곱씹으며 천천히 발을 내딛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하정우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이 문장은 사실 나에게는 너무 밋밋하다. ‘존경한다’거나 ‘동경한다’는 단어보다는 그냥 멋진놈이라고 편들어 주고 싶은 배우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단어를 붙이기엔, 그는 너무 인간적이다. 어딘지 모르게 빈틈도 있고, 엉뚱한 구석도 있으며, 지나치게 진지하다가도 갑자기 유쾌하게 돌아서는 묘한 반전이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게 맞다.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 사람처럼 연기하는 배우.
'하정우답다'는 말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종종 '하정우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그건 그의 연기 스타일이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장면에서도 너무 튀지 않고, 또 너무 눌리지 않는다. 마치 카메라가 있는 줄 모르는 듯한 자연스러움, 그게 바로 하정우식 연기다. 그리고 나는 그 연기의 진심을 믿는다.
『추격자』에서 그는 잔인하고 집요한 살인범을 연기했다. 『황해』에선 목숨을 건 도망자였고, 『더 테러 라이브』에서는 혼자 모든 걸 끌고 가는 방송국 앵커였다. 그리고 『롤러코스터』에선 어이없는 코미디를, 『암살』에선 건달을, 『신과 함께』에선 판관을 맡았다. 이쯤 되면 연기의 폭이 넓다는 말은 너무 흔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정우는 매번 다른 사람이 되면서도, 하정우인 채로 남는다.
그렇기에 나는 ‘하정우답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것은 그의 개성이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답게 진심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배역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배역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든다. 그것이 연기라는 이름으로 완성되는 순간, 관객들은 그를 믿는다. 마치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누군가의 얼굴을 스크린에서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이랄까.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이 책은, 나에게 배우 하정우가 아닌 사람 김성훈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걷는다는 것, 혼자 걷고, 여행하고, 고요히 나를 만나는 시간. 그는 자기 자신을 다그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자기 반성과 사유를 풀어놓되, 누군가에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좋았다.
책 속 하정우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곁의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사람이었다. 연예계의 화려함이나 배우로서의 자부심보다는, 오히려 조용한 불안과 고독, 그것을 이겨내는 일상의 루틴,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 잔잔히 배어 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걷는다. 그 걸음 하나하나에 ‘나는 살아 있다’는 안도의 마음을 담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종종 멈췄다. 문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문장 속에 담긴 진심이 너무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텐데,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더 진솔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다시, 감독 하정우
최근 하정우는 <로비>라는 영화로 돌아왔다. 배우가 아닌 감독이자 주연으로. 그는 이미 <롤러코스터>나 <허삼관>에서 감독으로서의 시도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전보다 더 정돈되고, 더 가깝고, 더 현실적인 이야기다. ‘로비 골프’라는 설정은 웃기지만, 웃음 속에 냉소와 풍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씁쓸한 현실이 담겨 있다.
나는 그가 왜 또 감독을 하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연기만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시선으로, 그것을 꺼내고 싶었을 것이다. <로비>는 그런 영화다. 현실을 포착하는 그의 눈은 여전히 유쾌하지만, 그 유쾌함 뒤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웃긴데 웃고만 있으면 안 되는, 그런 이야기.
왜 하정우인가
나는 그를 보고, 자주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잘생겨서? 연기를 잘해서?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불안과 싸우고, 성찰하며, 기록하고, 표현한다. 그것이 책이든, 연기든, 연출이든.
그런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특별한 사람이지만,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나답게 살겠다’는 태도가 그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그 태도가 나는 좋다. 그 자세가 나는 부럽다.
앞으로도, 걷는 사람
책을 덮은 뒤, 나는 문득 내 삶의 속도를 생각했다. 너무 빠르게 살고 있진 않은가. 너무 조급하게, 너무 남과 비교하며, 나를 몰아세우고 있진 않았는가. 하정우는 그저 ‘걷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이 나에게는 큰 울림이었다.
나는 오늘도 그를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볼까 한다. 삶은 마라톤이 아니라 산책이니까. 급할 것 없다. 중요한 건 계속 가는 것.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가끔은, 하늘도 한번 올려다보는 것.
하정우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좋다. 앞으로도 그를 응원할 것이다. 배우로, 감독으로, 그리고 걷는 사람으로.
그래서였을까. 나도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 책을 덮은 어느 날, 나도 하루 동안 22km 정도를 걸어봤다.
하남시에서 시작해, 한강공원을 따라 천천히 걸어 구리에 있는 집까지.
그 여정은 마치 무언가를 떠나는 동시에 되돌아오는 의식 같았다.
처음엔 발걸음이 가벼웠다. 공기엔 바람이 있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자전거 바퀴 굴러가는 소리, 강물의 반짝임까지 모두가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데 걷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지금 걷고 있지?”
아무 목적 없이 걷는다는 건 사실 꽤 낯선 일이었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려는 본능을 꾹 눌러야 했고, 중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도 수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힘들수록 마음은 점점 조용해졌다.
22km는 생각보다도 훨씬 먼 거리였다.
허벅지는 묵직했고, 발바닥은 화끈거렸다.
하지만 끝까지 걷고 나니, 단순히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가득했던 내 머릿속도 한 번 훑고 나온 기분이었다.
하정우가 말했던 그 문장이 떠올랐다.
“생각이 정리되는 게 아니라, 생각이 그냥 흘러가는 것.”
그래, 그거였다.
내 안의 소음들이 잠시 멈추는 그 시간. 내가 왜 그 배우를 좋아하는지, 왜 그 책이 그렇게 좋았는지, 그날 따라 걷다가 알 것 같았다.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현관문을 열고 제일 먼저 “아이고…”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은 피로의 표현이기도 했고, 작은 성취의 탄식이기도 했다.
내 몸은 무겁고 발은 부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나는 그대로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텔레비전도 안 켜고, 휴대폰도 안 보고, 그냥 멍하게 누워 있었다.
온몸이 고요한데, 머리는 오히려 맑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쉬다가, 문득 “그래, 이게 바로 하정우가 말하던 거구나” 싶었다.
샤워기 아래 서서 따뜻한 물을 맞는 동안, 내 몸에 묻은 하루의 무게가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걷는다는 건 단순히 발을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나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고, 스스로를 다시 안아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다시 ‘감독 하정우’로 돌아온 게 기쁘다
걷고, 생각하고, 나를 들여다본 하루의 끝에 나는 다시 그 사람의 영화를 떠올렸다.
<로비>. 하정우가 오랜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골프장과 비즈니스 로비, 거대한 금액과 모호한 윤리 사이에서 웃음이 터지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 영화는, 어쩌면 그의 또 다른 ‘걷기’일지도 모른다.
배우 하정우가 연기라는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면,
감독 하정우는 구조와 이야기 전체를 통해 그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고, 풍자적이지만 무책임하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역시 하정우’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어쩌면 그는 연출을 할 때에도, 걸음을 옮기듯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가 만든 세계는 복잡한데 이상하게 편안하다.
우리는 그 안에서 웃고, 생각하고, 돌아본다.
그의 영화가 모두에게 완벽한 정답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영화는 그가 살아온 방식,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나는 무조건적으로 신뢰한다.
<로비>는 그런 영화다.
웃음과 비틀림 사이에서, 결국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정우,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배우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하정우는 여전히 ‘걷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걸어가는 길을 계속 따라가고 싶다.
때론 유쾌하게, 때론 묵직하게,
그의 작품 속에서 삶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며,
또 나의 삶도 조금은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지니까.
앞으로도 그의 영화가 나오면 나는 극장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아마 또 어떤 밤엔, 그의 책을 다시 펼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내가 하정우라는 배우를 좋아하는 방식이니까.